매일 밤 10시, 그가 내 집 앞에 나타났다 Podcast By  cover art

매일 밤 10시, 그가 내 집 앞에 나타났다

매일 밤 10시, 그가 내 집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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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판례 매일 밤 10시, 그가 내 집 앞에 나타났다 예상 읽기 시간 약 8분·투표 참여 후 실제 판결 공개 이 판례 듣기 사건번호2022가단573842 (각색) 법원인천지방법원 관련 법률민법 제750조(불법행위), 스토킹처벌법 제2조, 제18조 카테고리형사·피해자 01그날의 이야기THE STORY 2021년 11월 3일 밤 10시 12분, 김민지(29)는 퇴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남자의 얼굴을 발견했다. 세 칸 뒤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전 남자친구 박준혁(32)이었다. 그들은 석 달 전 헤어졌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그는 ‘알았다’고 담담히 답했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 그는 매일, 정확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민지가 버스 노선을 바꾸자 같은 버스에, 퇴근 시간을 한 시간 늦추자 그 시간에 맞춰 나타났다. 직접 말을 걸거나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단지 20미터 뒤에서 따라왔고, 민지가 현관문을 닫을 때까지 건물 맞은편 편의점 앞에 서 있었다. 2021년 12월 15일, 민지는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박준혁에게 ‘왜 여기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원래 이 동네 자주 와요. 우연히 마주친 거예요’라고 답했다. 증거가 없었다. 박준혁은 민지에게 문자 한 통,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CCTV에는 그저 길을 걷는 남자만 찍혀 있었다. 경찰은 ‘스토킹으로 입건하기 어렵다’며 ‘주의’만 주고 돌아갔다. 그날 밤, 박준혁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민지 집 건물 1층 로비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민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친구 집으로 도망쳤다. 2022년 1월, 민지는 회사를 그만뒀다. 출퇴근길이 공포였다. 매일 뒤를 돌아봤고, 모든 남자가 박준혁처럼 보였다. 체중은 8kg 빠졌고, 밤마다 악몽을 꿨다. 정신과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진료비는 매주 15만원씩 나갔다. 2022년 3월 7일, 민지는 집을 옮겼다. 보증금 5,000만원짜리 원룸에서 월세 70만원짜리 고시원으로. 그러나 박준혁은 새 주소를 알아냈다. 민지가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주소를. 2022년 4월 18일 밤 11시, 민지는 고시원 복도에서 그와 마주쳤다. ‘왜 이러세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보고 싶어서. 나 아직 좋아해. 다시 만나줄 수 있지?’ 민지는 비명을 질렀고, 고시원 주인이 112에 신고했다. 이번엔 경찰이 스토킹 혐의로 입건했다. 2022년 6월, 박준혁은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민지의 일상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혼자 외출할 수 없었다. 새벽 3시에 깨서 문단속을 확인했고,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정신과 치료는 계속됐고, 실직 상태는 7개월째 이어졌다. 민지는 계산했다. 의료비 780만원, 이사 비용 320만원, 실직으로 인한 소득 손실 1,600만원. 2022년 7월 4일, 민지는 박준혁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청구 금액은 5,000만원. 재산상 손해 2,700만원과 정신적 손해 2,300만원이었다. ‘내 일상을 돌려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내게 한 일에는 대가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민지는 8개월치 CCTV 영상, 112 신고 기록 28건, 정신과 진단서 12장, 그리고 매일 밤 적었던 공포 일기를 증거로 제출했다. 법정에서 박준혁은 처음으로 사과했다.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힘들었어요. 이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의 변호인은 주장했다. ‘피고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협박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우연히 같은 동네에 있었을 뿐입니다. 5,000만원은 과도합니다.’ 민지의 변호인이 반박했다. ‘피고는 원고의 동선을 파악해 의도적으로 미행했고, 8개월간 원고를 감시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스토킹이며, 원고는 그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재판부는 신중했다. 2022년 10월 21일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스토킹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는 아직 판례가 많지 않았다. 특히 ‘직접적 폭력이 없는’ 경우 손해액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 의료 기록, 경찰 신고 이력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그리고 3개월 뒤, 판결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매일 밤 10시 12분, 그가 내 집 앞 편의점에 서 있었습니다. 말을 걸지 않았어요. 그냥 서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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